Aug 20, 2022

රාජ්‍යයක් අවශ්‍ය කුමටද?

 


රාජ්‍යයක් අවශ්‍ය කුමට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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ටික දිනකට පෙර රාජ්‍ය සේවය සම්පූර්ණයෙන්ම පෞද්ගලීකරණය කළ යුතුය කියා ලියූ වෙලේ, රාජ්‍යයෙන් පිනට කෑ වුන් මෙන්ම තාමත් කන බොහෝ පිරිසක් මා සමඟ උරණ වී අපේ අම්මා මතක් කළ අතර, සමහර උන් දුරකතන ඇමතුමක් දී ඒ පින අනුමෝදම් කළ බව කියන්නේ බොහෝ සතුටින්මය.

දියුණු සමාජයක රාජ්‍ය විසින් සිඳු කළ යුතු රාජකාරීන් බොහෝ සීමා වී ඇති අතර, එවන් දියුණු රාජ්‍යයන් පාලනය, තරුණ ප්‍රජාවට බාර වී ඇත්තේ, ආර්ථික සංවර්ධනයෙන් පමණක් නොව ආකල්පමය අතින්ද සංවර්ධනය වී ඇති නිසාය. 

ඇත්ත වශයෙන්ම මේ පිළිබඳව ඉතා සරළ බසින් අපට කියාදෙන අරුණි ශපිරෝ මහත්මියගේ ළිපි, ලෝකය ගැන දැනගැනීමේ පිපාසාවෙන්න් පෙලෙනා අප වැනි ළිං මැඩි ගෝත්‍රික ප්‍රජාවකට මහා රුකුලක් වන්නේමය.

සමහර මෝඩයන් එවේලේ කිව්වේ, පාර්ලිමේන්තුවද පෞද්ගලීකරණය කරනා ලෙසය. රාජ්‍යයක පැවැත්මට, ආරක්ෂාවට මෙන්ම, හදිසි හා ස්වභාවික විපත් වලදි උදව් උපකාර සහනාධාර ලබා දීමටත්, සියල්ල අධීක්ෂණයට හා නිරීක්ෂණයටත් (දත්ත පවත්වාගෙන යාමට), නීතිය හා සාමය සුරැකීමටත්, ආගමන විගමන ගටයුතු මෙන්ම විදෙස් සබඳතා සඳහාද යම් යම් ආයතන, රාජ්‍ය සතුව පැවතීම අනිවාර්‍යය. 

එහෙත් රාජ්‍යය බිස්නස් කරන්නට යාමෙන් අවසානයේ සිඳුවන්නේ කුමක්ද යන්නට හොඳම උදාහරණයක් අවශ්‍ය නම් ඒ වෙන කිසි රටක් නොව, මේ අපේ ධර්මද්වීපයමය.
මේ ගැන අනන්තවත් ලියා ඇති නිසා නැවත ලිවීම කියවන ඔහේලාටත්, ලියන මටත් පට්ට බෝරින් වැඩක් නිසා ඒ තැටිය නැවත වාදනය කරන්නේ නැතිය.

එසේ බිස්නස් වලට නොගියත්, පෞද්ගලික වෙළෙන්දා පාරිභෝගිකයා හූරාගෙන කෑමට එරෙහිව රාජ්‍යය අනිවාර්‍යයෙන් මැදිහත් විය යුතුමය. පාරිභෝගික අධිකාරියක්, පොලීසිය හා අධිකරණය තියෙන්නේ ඒකටය, ඒවායේ ඉන්නා උන්ට පඩි නඩි හා දීමනා ලබා දෙන්නේ ඒකටය. ඊට පිලියම නැවත ආන්ඩුව බිස්නස් කරන්නට යාම නොව, වෙළඳපොල විවෘත කිරීමය.

වෙළඳ ඇමතිවරයා කරන්නේ මේ වැඩේය. දැන් හාල් මාෆියාවට මෙන්ම වී ගොවි මාෆියාවටද කෙල වී හමාරය. බිස්කට් කාරයන්ට කෙලවෙලාම ගියේය. එමෙන්ම බිත්තර වලට පාලන මිළක් දැමීමද, බිත්තර ගොයියෝ ලෙඩේ ඇද්දොත් පිට රටින් ගෙනත් දෙන බව කී එකද ග්‍රේට් වැඩය. 

හැබයි මේවා කිව්වා වගේම කරන්න කංචනට වගේ හයිය පිට කොන්දක් තිබෙන්නටත් ඕනාය. බිත්තර මාෆියාවට බය වී, බය ඝෝඨා මෙන් ගහන ගහන ගැසට් අකුලා ගන්නා හාල්පාරු ගොබ්බ පාලකයන්ට අවසානයේ සිඳු වූයේ කුමක්ද යන්න, සහනාධාර උඩ දමන කොයි ගොබ්බ දේශපාලුවාටත් හොඳ පාඩම්මය.

දැන් නන්දසේන වෙනුවට ඇවිත් ඉන්නේ නන්දලාල්‍ උන්නැහේය. එයා රටෙ ආර්ථිකය යහපත් තත්වයකට ඇවිල්ලැයි කිව්වාට, ජනතාවගේ ආර්ථික තත්වය නම් තියෙන්නේ අම්මාට හැමිනිලාය.

එයා මේ කළුකඩ මාෆියාවට එරෙහිව අද වනතෙක් කටක් ඇරිලා නැතිය. එයාගේ තියරිය අනුව, රටේ සල්ලි පිටරට යන නිසා, එයා ඉන්නේ දේශීය ව්‍යවසායකයා, නිශ්පාදකයා හා ගොයියා මෙයින් වාසි ගන්නා කූට ව්‍යාපාරිකයින් මෙන්ම පන් ගොයියා කරන්නේ පාරිභෝගිකයා හූරාගෙන කෑමය.

නන්දලාල්ලාට නම් සල්ලි නැති වුවහොත්, සල්ලි අච්චු ගහලා එයාගේ පඩිය ගන්නට පුලුවන් උනාට, අපි සල්ලි අච්චු ගහන්න ගියෝතින් ඒක නීතී විරෝධියි කියා අච්චු කරන්නේත් එයාලාමය.

ඒ නිසා එක්කෝ අපිටත් මනී ප්‍රින්ටින් වලට අවසර දෙන්නට ඕනෑය. එහෙම නැත්නම්, කළු කඩ කාරයන් හා පන් ගොයියන් කෝටිපතියන් කරන්නේ නැතිව, සාධාරණ මිලකට අත්‍යාවශ්‍ය භාන්ඩ ටික ජනතාවට අවශ්‍ය ප්‍රෝටීන් ටික අපට ලබා දිය යුතුය.

රාජ්‍යයක් හා පාලකයෝ ඉන්නේ ඒවාට මිස, ප්‍රෙස් කොන්පරන්ස් තැබීමටවත්, බෝධි වන්දනාවලට හෝ අටමස්ථාන නමදින්නටත් නොවේය.

ජනතාව දැන් ඉන්නේ ඔය විගඩම් දැකලා ඇතිවෙලාය. දැන් උන්ට ඕවාට කේන්ති යන්නේ නැතිය. දැන් උන් ඒවා දැක්කාම කරන්නේ, හිකෙන් පුනාවෙන එක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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ඒ වගත් මෙසේය.........

©® Priyantha Hewage Maathal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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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comments:

  1. අලුත් බිස්කට් පැක්ටරියක් අරින නිසා අනිත් එවුන්ට ගහන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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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1.


      심보선 시인이 낳은 말처럼, “초 단위로 조용히” 늙고 싶었다. 진행 중인 늙음을 알아차리면서 무감한 여유로움으로 그 변화를 수용하고 싶었다. 서른과 마흔을 치열하게 달려왔으니 그럴만한 자격도 있고 또 충분히 그럴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쉰을 넘고 한 두 해가 흘렀을 때, 젊은 시절의 내 노동은 현물로 치환되지 못했음을 인정해야 했다. 잘 될 것이라는 희망은 잡히지 않는 추상이었고 통장의 마이나스 수치는 눈에 보이는 구체성이었다. 10년 이상을 운영하던 회사는 작게 비가 새더니 그 구멍이 점점 커져서 난파선처럼 위태로웠다. 한때 회사를 확장하겠다고 무리한 대출을 일으킨 것이 화근이었다. 이자와 원금을 내기 위해 또 다시 대출을 일으키는 악순환. 특별히 잘 못한 것도 없는데, 흥청망청 낭비한 것도 없는데, 왜 이런 고통을 맞이하고 있는지 억울했지만 억울한 사이에도 갚아야 할 하루의 빚은 늘어갔다.



      심보선 시인이 같은 시에서 말한 대로, “이렇게 된 것은 이렇게 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를 밥처럼 읽고 위로 받으며 꾸역꾸역 살아내는 날들이 이어졌다. 올해 초에 극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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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사람처럼



      몇 번의 이자를 연체하고, 카드가 정지되고, 줘야 할 돈을 주지 못해 전화 소리만 들어도 경기를 일으키다가 친한 사람들에게 돈을 빌리자는 생각이 유혹처럼 들었다. 한 번도 그런 적 없었으니 빌려줄 거야, 누구에게 먼저 부탁을 할까. 인간의 뇌는 확정한 것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 보다 결정된 것의 알리바이와 구실을 먼저 만들도록 세팅돼있다. 다행히도 이번에는 뇌세포가 그 매뉴얼에 반란을 일으켰다.


      에라이! 그럴 바에는 그들에게 영업을 하자!


      돈을 빌려달라는 구차함보다는 내 물건을 사달라는 협박이 백배 당당할 것 같다는 생각이 훅하고 들었다. 그래도 누군가의 눈물을 흘리게 하지 않고 오십을 살아왔다는 자신감으로 며칠 밤을 새워 3시간의 치유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그리고 메일로 알리고 전화로 알리고 찾아가서 알렸다.



      그 과정에서 나는 지인들에게 거의 은혜라고 불러도 좋을 도움을 톡톡히 받았다. 자기 회사에서 몰래 내 프로그램의 제안서를 만들어 준 후배 J, 프로그램의 로고를 만들어준 S, 도입부의 음성 녹음을 자처해준 H, 자신이 운영하는 팟캐스트를 통해 선배의 프로그램을 발벗고 홍보해 준 W, 그 내용이 무엇이건 나라는 이유로 첫번째 클라이언트가 되겠다며 선급금을 보내온 J형, 술자리에서 조용히 불러내 박카스 값이라며 오만원 짜리 한장을 쥐어주던 D형, 밥 거르지 말고 재기하라며 피자를 보내준 L 누님, 힘든 아빠에게 소주와 순댓국을 사준 나의 딸…. 일일이 호명할 수가 없을 정도로 온정의 손길이, 과장한다면, 사랑의 리퀘스트 수준이었다.



      그 동력으로 재기의 시동을 제대로 걸 수 있었다. 반년이 지난 지금 내가 만든 프로그램은 내 회사의 대표 상품이 되었고, 쓰러지는 회사를 두 손으로 일으켜세우는 골리앗의 역할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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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시간의 적정치유, 곁



      은혜의 쓰나미를 맞던 무렵이었을 것이다. 오랫동안 냉담했던 나의 신을 다시 찾기 시작했다. 출근 전 집 앞의 기도소에 들려 무릎을 끓고 기도했다. 나에게 도움을 준 사람들을 절대 잊지 않게 해달라고, 그들의 이름을 하나씩 부르고, 그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이 위기가 지나더라도 그들에게 받은 고마움을 죽을 때까지 기억하게 해달라고 간곡히 빌었다.



      그렇게 일주일, 열흘, 그리고 보름이 될 무렵, 지금의 이 힘든 시기에 나에게 특별한 도움을 준 사람들만이 아니라, 내 인생 전체가 누군가의 도움 속에서 지어진 것이라는 자각이 스르륵 스며들었다. 내가 잊고 있거나, 무심했거나 아예 생각도 못했거나 더러는 기억하고 있거나 그런 모든 존재들의 손길 속에서 내가 여기까지 온 것이라는 내면의 소리를 나는 아침마다 듣기 시작했다.



      겸손해야지, 감사해야지, 그리고 초 단위로 조용히 늙을 것이 아니라 초 단위로 더 열심히 노동해야지, 그리고 누구에게든 나의 것을 되돌려줘야지, 빚 갚아야지, 그것이 내 인생의 숙제인 것이지, 라는 말을 기도소에서 나오면서 늘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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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



      점쟁이에게 줄초상을 치를 것이라는 점괘를 받고 육백만 원짜리 굿을 하라는 처방을 받은 여자가 있다. 그러나 특별히 고민할 것도 없는 것이, 당장 그녀에게는 그만큼의 돈이 없었다. 점쟁이를 소개해 준 선배는 미안한 마음에 여자를 위로한다. 예전에는 굿을 하면 굿판의 떡과 과일로 70가구, 280명을 먹여살렸대, 그냥 보시해서 업보를 풀라는 뜻으로 받아들여. 굿 대신 내가 간절히 기도해줄게.





      “선배의 말에 위로를 받으며 여자는 오히려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생각한다. 살아가는 동안 280명에게 따뜻한 밥 한끼 나눠주겠다고 다짐한다. 자신의 삶도 누군가에게 빚지고 있다는 자각, 삶을 바라보는 시선의 성장.” 그 여자, 은유의 책, 『싸울 때마다 투명해진다』 중에서 ‘오래 고통 받은 사람은 알 것이다’ 의 내용이다.



      나는 이 에세이를 읽으며 나의 고통, 그리고 그 고통 속에서 얻는 주변 사람들에 대한 고마움, 내 인생 전체의 빚짐을 더 선명하게 바라볼 수 있었다. 그것 외에도 이 책은, 생각할 거리를 참 많이 던져주고 멈추게 하고 돌아보게 하고 한숨 쉬게 하고 부끄럽게 한다.



      작가는 『싸울 때마다 투명해진다』 를 서른 다섯부터 마흔 다섯을 경유하는 한 여자의 투쟁 기록이라고 정의했지만 그 기록의 사유는 너무나 깊고 그 연원은 꾸미지 않고 생생하며 특히 기록의 문장은 매혹을 넘어 치명적으로 황홀하다. 자기가 좋아서 무언가를 했던 사람의 나무에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의 달디단 과실이 열린다. 좋아서 했던 절실한 자기 학습과 풍성한 독서 속에서 뽑아낸 인용과 시(詩)를 골재로 하여 , 여자의 본분과 인간의 존재와 사랑이라는 의미와 일이라는 가치에 대해 이야기할 때 그녀의 언어는 진정하고 활자에서는 사람의 향기로 온통 분분하다.



      “남자는 애 아니면 개”라는 김제동의 말 속에서 가부장제 언어를 잡아내는 섬세한 문제의식, 한쪽의 수고로 한쪽의 안락을 누리지 않아야 좋은 관계라고 생각하는 합리적 철학, 사랑은 새로운 생활방식이지 신앙이 아니라는 자유로운 낭만, 이런 마중물이 작가의 우물에서 이 좋은 글들을 뽑아내는 힘일 것이다.



      그 어떤 페미니스트 책보다, 연륜과 경험을 갖춘 유명한 작가의 에세이보다, 학식과 명성을 두루 갖춘 시인, 소설가, 철학가의 글보다 나는 은유의 『싸울 때마다 투명해진다』를 읽은 것이 감동적이고 고맙다. 오랜 만에 정말 제대로 된 진짜를 만난 것 같은 흥분감이 이 책의 마지막 장에 떨리는 지문으로 남아있다.



      무엇보다, 초 단위로 확인하는 우아한 늙음보다 초 단위의 노동을 선택한 동지를 만난 듯해 나는 기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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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 남아공의 여자 육상스타 세메냐 선수 기억나십니까. 2009년 월등한 기량 차이로 세계육상선수권 여자 800m 결승에서 우승해 성별 논란이 일었습니다. 세메냐 선수는 남성과 여성의 특징을 모두 가진 인터섹슈얼(intersexual) 여성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우리 사회에도 인터섹슈얼들이 있지만 이들에 대해 우리가 진지하게 고민해본 적이 없습니다. 인터섹슈얼 여성인 김래연씨가 어렵게 언론과 만나 자신의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아이의 울음소리가 산부인과 분만실의 공기를 갈랐다. 엄마의 몸속에 있다 막 세상으로 나온 아이는 모든 게 낯설었다. 눈을 감고 우는 게 세상과 나눌 수 있는 유일한 대화였다.
    아이의 몸은 여느 아이와 다를 게 없었다. 페니스(penis·남성의 성기)가 달려 있어 의심의 여지 없이 사내아이였다. “아들입니다.” 아이를 받은 분만실의 간호사는 아이를 바라보는 엄마에게 말했다. 가쁜 숨을 내쉬면서도 엄마는 따뜻한 미소를 지었다.

    아이는 부모의 사랑을 받으며 여느 사내아이처럼 평범하게 자랐다. 사춘기가 찾아왔다. 뭔가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여자보다 남자를 보면 가슴이 뛰었다. 여자처럼 화장을 하는 게 좋았다. 변성기가 오지 않았다. 가슴이 자라고 엉덩이가 커지기 시작했다. 남성의 몸에서 여성이 자랐다. 생리 비슷한 것이 반복됐다. 피는 나오지 않았지만 냉이 흘렀다. 엄마는 말했다. “사내들은 원래 운동하면 가슴이 커지는 거야.” 아이는 스포츠 브래지어를 차고 가슴을 눌렀다. 항문 쪽에 생기는 변화에 대해서는 ‘꼬리뼈가 사라진 흔적’이라는 설명을 들었다. 아이는 그 말을 믿었다.
    사내아이인데 여성처럼 몸이 변해가자 ‘고추는 달리긴 한 거냐’며 놀리는 친구들이 늘어났다. 탈출구는 공부였다. 악착같이 공부해 자신의 존재가치를 입증하지 않으면 아이는 또래 친구들과 어울릴 수가 없었다. 아이는 서울의 한 명문대 법학과에 입학했다.
    2008년 아이는 스물다섯 어른으로 자랐다. 여성과 남성 모두의 특징을 가진 채 그대로 성인이 되었다. 페니스를 갖고 있어 남자였지만 동시에 여성의 가슴과 질을 가진 여성이었다. 더이상 견딜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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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내가 트랜스젠더(transgender·성전환자)인가?’ 고민 끝에 병원 정신과를 찾았다. 의사는 진료 뒤 뜻밖의 말을 꺼냈다. “트랜스젠더가 아니라 인터섹슈얼(intersexual·반음양 사람)인 것 같아요. 제대로 검사를 해보는 게 좋겠어요.”
    놀랍게도 산부인과 검사 결과 그의 몸에 정소와 난소가 모두 존재하는 것이 확인됐다. 질과 음순이 항문 뒤에 숨겨져 있는 것도 발견됐다. 인터섹슈얼 진단을 받았다. 오히려 기뻤다. “충격을 받기보다는 진정한 나를 알게 되어 기뻤어요. 내 몸이 이상했던 이유를 비로소 알게 된 것이니까요.”
    “수정 과정에서 Y염색체 일부가 섞인 듯”
    인터섹슈얼 성정체성을 가진 김래연(가명·30·현재 여성)씨는 성염색체 배열 구조가 XX였다. 남성의 경우 XY의 구조다. 김씨를 진단한 의사는 “정자와 난자의 수정 과정에서 Y염색체의 일부가 섞여 페니스가 생긴 것 같다”고 말했다.
    인터섹슈얼은 수정된 태아가 자궁 안에서 분화해가는 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자연스러운 존재다. 염색체 이상으로 이러한 일이 벌어지기도 하지만 단순한 호르몬 과다나 결핍으로도 발생할 수 있다. 인터섹슈얼은 어떤 돌연변이이거나 괴물 같은 존재가 아니다.
    김원회 부산대 의대 명예교수(전 대한성학회 회장)는 “드물게 벌어지는 것이긴 하지만 (남성과 여성의 성기를 모두 갖고 태어나는 것 등은) 태아의 분화 과정에서 벌어질 수 있는 일이다. 태생 초기에는 남녀 모두 일차 조직이 있었기 때문에 분화 과정에서 어떤 원인으로든지 이상이 생기면 양성의 상태로 태어날 수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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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남자인 줄 알았는데 이상했다
    25살 때 병원에 찾아갔다
    여성의 성기가 발견됐다
    그는 정소·난소를 다 가진
    인터섹슈얼임을 알게 됐다 
    페니스 제거 수술을 받은 뒤
    온전한 여성으로 살고 있다
    자궁도 있고 생리도 한다
    법적 성별 전환도 완료했다
    문제는 다들 숨어산다는 거다
    고대 그리스 사회에서는 여성과 남성의 특징을 두루 갖춘 사람을 완벽한 이상형으로 생각했다. 그리스 신화를 살펴보면 당시 그리스 사회의 철학을 살펴볼 수 있다.
    헤르마프로디토스는 원래 남자로 태어났는데 열다섯이 된 어느 날 호수의 요정 살마키스에게 유혹당한다. 살마키스는 둘을 영원히 떨어지지 않게 해달라고 신에게 기도한다. 신이 기도를 받아들여 둘의 육체는 하나가 된다. 헤르마프로디토스는 양성을 모두 지닌 완벽한 사람이 되었다. 의학계에서 인터섹슈얼을 허마프로다이트(Hermaphrodite)라고 부르는 것은 그리스 신화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인터섹스(intersex·간성의 성별)는 진성반음양과 가성반음양으로 나뉜다. 김씨의 경우 진성반음양에 속하는데, 진성반음양은 난소와 정소를 모두 갖고 있어 남성과 여성의 기능을 모두 할 수 있다. 대부분 유전적으로 여성의 성염색체 배열(XX)을 지니지만 일부 소수는 남성의 성염색체 배열(XY)을 갖거나 둘 모두를 지니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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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계속 숨어지내면 없는 것처럼 취급받아요”
    김씨는 일부러 인터섹슈얼 여성임을 숨기지 않는다. 물어보지 않는 이들에게 굳이 먼저 이야기하지는 않지만 필요한 경우에는 당당하게 인터섹슈얼임을 고백한다.
    “저 같은 사람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예요. 계속 숨어 지내면 인터섹슈얼은 세상에 없는 것처럼 취급받아요. 세상 어느 곳을 가도 존재하는 평범한 사람들이란 것을 알리고 싶어요.” 그는 현재 법학전문대학원 입학을 준비한다. 인터섹슈얼의 사회적 차별 문제를 해결하는 변호사가 되는 것이 꿈이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육상 소녀 캐스터 세메냐는 유명한 인터섹슈얼 선수다. 세계육상선수권 2009년 여자 800m 부문에서 우승하는 등 세계적 스타였지만 다른 여성 선수와 다른 월등한 기량 때문에 남성호르몬 약물 복용을 의심받았다.
    언론들은 “세메냐가 난소와 자궁 대신 남성호르몬을 생산하는 고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보도했다. 국제육상경기연맹이 세메냐에 대한 자체 조사 결과를 공개하지는 않았지만 세메냐가 인터섹슈얼 운동선수인 것을 부인하지는 않았다. 동시에 세메냐가 여성임을 인정해 세메냐는 이후 육상 경기에 출전할 수 있었다. 세메냐 사건은 우리 사회에 인터섹슈얼이 흔하게 존재할 수 있음을 생각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까지 인터섹슈얼에 대한 진지한 논의가 없다.
    “지렁이가 아니라, 저는 사람이에요”
    김씨는 평범한 여성으로 사는 것이 꿈이다. 아직 남자친구를 제대로 사귀어보지 못했다. 늘씬하고 키가 큰 김씨의 외모에 반해 고백을 해오는 남성들은 있지만 아직 김씨의 마음이 준비되지 않았다.
    “눈에 들어오는 남자들은 있지만 저에 대해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라 마음을 열기가 쉽지 않아요. 제가 인터섹슈얼이라고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되지만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제 스스로를 온전히 설명하고 싶기도 해요.”
    페니스 제거 수술 이후 오랫동안 관계가 소원했던 김씨의 어머니는 이제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열고 있다고 한다. 혼자 사는 집에 어머니가 가끔씩 찾아와 김씨를 만나고 돌아간다. 아직 아버지와 동생은 김씨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인사를 건네도 받지 않는다. 아직 김씨는 가족들에게 투명인간이다.
    그러나 김씨는 원망하지 않는다. “시간이 걸릴 거라고 생각해요. 아직 우리 사회가 제대로 인터섹슈얼에 대해 논의를 제대로 한 적이 없잖아요. 차라리 우리를 장애인으로 생각해도 좋으니 사람으로 생각해줬으면 좋겠어요. 동성애자들은 변태 취급을 받으면서도 사람이라는 인식이 있지만 우리는 (자웅동체인) 지렁이 같은 존재로만 취급받아요.” 김씨가 가늘고 여린 목소리로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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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법무부 장관에 지명되었던 후보자가 42년 전 좋아하던 여성의 도장을 파서 허위 혼인신고를 했다는 사실이 드러나자 갑자기 사방에서 “옛날에는 (여자를) 보쌈도 했다”는 소리가 들렸다. 여자를 보쌈한다니, 여자의 살이 정말 돼지 수육이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야말로 보쌈이 먹고 싶은데 날이 더워서 수육을 삶기가 귀찮아 참고 있으니까.


    아폴로 11호가 달에 착륙한 지 어언 50년 가까이 되었어도 지구별의 남성들은 달나라에서 토끼가 방아 찧던 시절의 ‘낭만’을 공유하고 싶어 한다. 세상이 진화를 하든 진보를 하든, ‘남자의 본능’이란 세계를 끌어 붙들고 언제나 수렵과 채집의 시대로 돌아가 ‘사냥꾼’ 본능을 발휘하려는 움직임은 예견되었던 일이다. 이 세상에서 비유 척결이 목표도 아니고, 그건 가능하지도 않다. 다만 불균형적으로 퍼져 나가는 우리의 차별적 언어는 ‘자연’이나 ‘본능’이 아니라 인간이 힘으로 축적한 수치스러운 흔적임을 자각할 필요가 있다.


    그나저나 여자만 먹거리에 비유될까. 남자도 물론 먹거리에 비유되곤 한다. 그러나 그 범위가 훨씬 좁고 활용도가 낮음은 물론이요, 나타나는 양상이 전혀 다르다. 일단 남자의 몸은 별로 먹을 게 없다. 초콜릿, 고추, 소시지, 오이, 바나나 등인데 대부분 성기에 집중되어 있다. 돼지 수육에서 자연산 회까지 온갖 유기농 산해진미를 온몸에 고루고루 갖춘 여성의 몸에 비하면 영 부실하기 짝이 없을뿐더러, 가공 육류도 있고 음식이 서로 궁합도 잘 안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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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지오르지오 데 키리코의 그림 을 보자. 아프로디테 토르소와 바나나 한 무더기가 있다. 여성의 벌거벗은 몸뚱이와 바나나가 함께 있으니 오늘날에는 에로스적 상징으로 보기도 한다. 그러나 데 키리코의 그림은 수수께끼다. 그의 다른 그림 에도 바나나가 덩그러니 놓여있다. 의 뒤편에 기차와 배가 있듯이, 몽파르나스 역에 놓인 기차와 바나나의 관계는 여행을 연상하게 한다. 19세기 후반부터 기차역과 증기기관차는 미술과 영화에서 꾸준히 새로운 문명과 이동의 자유를 상징하는 대상으로 불려나왔다. 당시의 바나나란 이렇게 이동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이국적’인 문화의 상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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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오르지오 데 키리코, , 1914년



    지금 바나나는 상대적으로 저렴한 과일이다. 8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한국에서 바나나가 비쌌기 때문에 주로 손님이 오면 맛볼 수 있는 선물용 과일이었다. 마치 ‘일제’ 전자제품처럼, 바나나를 먹어 본 경험은 다소 ‘고급 수입 문물’을 체험한 듯한 기분을 안겨줄 정도였다. 이렇게 당시 바나나가 가지고 있던 ‘수입’, ‘고급’의 상징성이 오늘날 사라졌듯이, 상징은 그렇게 시대적 상황에 따라 혹은 개인적 경험에 따라 가변적이다.


    상상력의 ‘자유’가 아주 협소한 영역에 있는 모습을 보면 답답하기 짝이 없다. 상상의 성애화는 상상력을 길러주기는커녕 상상력의 범위가 성애 안에 갇혀서 확장을 못 하게 한다. 그러니 ‘바나나’에 대한 상상력이 뻔해지고 ‘바나나 먹는 여자’ 타령이나 하게 된다. 성차별적 인식이 얼마나 상상력을 가둬 놓는지, ‘페리에 광고’ 논란이나 ‘더러운 잠’을 둘러싼 논란을 보면 알 수 있다. 여성의 성 해방과는 무관한, 남성의 여성을 향한 자유로운 대상화를 마치 ‘리버럴’의 정신이라도 되는 양 갈망한다. 여자를 죽이거나 벗기는 진부한 표현을 무한 반복하면서 상상의 자유를 외치는 희한한 상황이다. 한 여성 연예인이 입에 휘핑크림을 잔뜩 뿌리는 동영상을 인스타그램에 올렸을 때 반응을 떠올려보자. 여성을 대상화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성적 판타지가 어쩌고 하면서 자유를 외치다가도 정작 여성이 입에 휘핑크림을 뿌려대며 얄궂게 웃으니 온통 성질을 내기 바쁘지 않았나. 그 성난 반응에서 찾을 수 있는 자유는? 없다.



    일부 이슬람 문화권에서는 여자들에게 ‘성기처럼 생긴’ 오이와 바나나 등의 음식을 직접 만지지 못하게 한다는 기사를 읽은 적 있다. 요리를 위해 필요한 경우 남자들이 이 식재료를 잘라서 준다고 한다. 길쭉하게 튀어나온 물건을 입에 넣는 여자를 바라보는 남성을 비틀어 보여주는 장면이 에 등장한다. 복남이는 자신을 죽이기 위해 남편이 들고 있던 칼끝을 자신의 입에 물고 혀로 살살 핥는다. 이에 정신 못차리고 남편이 느슨해진 틈을 타 상황은 전복되고 복남이는 순식간에 그 칼을 입에 물고 남편을 찔러 죽인다. 길쭉한 것에 대한 애착만큼이나 ‘구멍만 있으면’ 여자 성기를 연상하는 구멍애자들에게는 심지어 블랙홀도 외설스러운 작명으로 보였다. 그 머릿속이야말로 진짜 블랙홀이다. (이 논란은 『The Black Hole, 25 Years After』, 『The Black Hole War』에 언급되어 있다.)


    또한 남성기에 비유되는 먹거리에 대해 늘 품고 있는 궁금증이 있다. 남성기에 대한 비유는 묘하게도 평상시 모습이 아니라 발기된 상태를 기준으로 한다. 그래서 바나나를 남성기에 비유한다. 심지어는 ‘가운데 다리’라는 말도 있다. 대상화라기보다 오히려 남성성의 과시용으로 쓰인다. 즉, 바나나, 소시지 등은 여성에 의한 남성의 대상화가 아니라, 남성사회가 소망하는 이미지다. 다시 말하자면 오이, 고추, 바나나, 소세지 등으로 남자가 대상화되는 것이 아니라, 이것들을 ‘먹는 여자’를 대상화하며 이 여자들을 보는 쾌락을 누리려 한다. 이러한 마음을 ‘예능’이라는 이름으로 조금 포장하면 바로 JTBC에서 방영했던 이라는 방송이 되는 것이다. 이 방송을 보면 먹는 여성을 향한 성적 대상화가 어떻게 문화가 되는지 알 수 있다. 닭 뼈를 먹는 여성의 입을 클로즈업 하여 반복적으로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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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작은 고추가 맵다는 말도 있다. 몇 년 전 방앗간에 고추를 빻으러 간 엄마. 덜 맵다는 고추를 텃밭에 심었는데 고추가 무지하게 맵다고 했더니 방앗간 사장님이 말하길, 가뭄이 심한 후에 장마가 계속되는 악조건 속에서 고추가 더 맵다고 했단다. 실제로 고추 전문가들의 의견을 찾아봤다. 고추의 맵기 정도는 크기가 아니라 습도와 관계있다고 한다. 건조한 지역의 고추는 덜 맵고 습기가 많은 환경에서 자란 고추는 각종 병충해에서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매워진다고 한다. 곧, 고추의 매움은 온도와 습도 등 환경의 영향이지 고추 크기와 일치하진 않는다. 작은 고추가 맵다는 말은 아마도 작은 고추가 맵기를 바라는 누군가의 열망이 담긴 표현일 것이다.


    남자의 성기는 음식보다는 주로 공구나 기계에 비유한다. 총, 카메라처럼 무언가를 찍거나 쏘는 도구다. 그래서 ‘물건’이 된다. 남자의 물건. 이 물건들은 찍고 쏘는 대상을 필요로 한다. 스스로 대상이 되지 않는다. 몰카 범죄의 난립은 ‘물건’에 해당하는 남성의 성기와 눈을 기술적으로 확장한 성범죄다.


    얼마 전 미국 남서부의 뉴멕시코 주에 가니 온통 고추투성이였다. 집집마다 걸어놓은 고추들은 색깔도 크기도 다양할뿐더러 황토색 어도비 양식의 건축물과 어우러져 보기에 예뻤다. 마음에 잠깐의 평화와 아름다움을 주는 고추들. 조지아 오키프의 활짝 핀 꽃이 떠오르는 뉴멕시코에서 고추 그림이 그려진 컵을 하나 사왔다. 아침에는 바나나도 먹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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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머릿속으로 완전한 문장을 만들기 전엔 외국어로 말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는 사람들이 있다. 나도 그중 하나였다. 지겹게 외운 대로 “만나서 반갑습니다”까지는 하겠는데 그다음이 문제다.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과거형인가 미래형인가, 전치사는 뭘 써야 정확할까, to 부정사 이렇게 쓰는 게 맞나 하며 머릿속이 엄청나게 복잡해진다. 쪽팔리게 괜히 헛소리하느니 입을 다문 채 눈만 껌뻑껌뻑하고 마는 식.



    20년쯤 전에 형부를 처음 만났을 때도 그랬다. 형부는 미국 사람인데, 언니를 만나고 연애하며 한국어를 조금씩 배웠다. 바짝 긴장해선 언제나처럼 딱딱한 교과서 말투로 첫인사를 하고, 고르고 고른 문장으로 어렵게 대화했다.



    그런데 실은, 당시에도 이미 나는 영어에 꽤 자신이 있었다. 뉴스나 영화를 보고 책을 읽는 데 큰 문제가 없으니 뭐, 그 정도면 괜찮은 것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말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 형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입이 떨어지지 않아 듣기만 하고 내 이야기는 거의 하지 못했다. 가족이 될 사람인데, 궁금한 게 무척 많았는데… 아휴, 답답해.



    어느 날 형부가 한국어로 말했다.



    “예희, 나 한국말 잘 못해요. 내가 바보 같아요?”



    아니 이게 무슨 소리야, 어디서 누가 무슨 시비라도 걸었나! 깜짝 놀라 절대 그렇지 않다고, 왜 그런 말을 하느냐고 되물으니 형부가 다시 말했다.



    “예희도 그래요. 그러니까 그냥 영어 해도 돼요.”



    ‘완벽하기’란 과연 가능한 일일까? 완벽이란 게 존재하기나 할까? 아닐 거다. 그런데도 그 불가능한 것 때문에 스스로 쿡쿡 쑤시고 괴롭힌다. 결혼할 사람이 아니라면 애초에 시작도 하지 않겠다며 가벼운 데이트, 부담 없는 대화에도 철벽을 친다.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모르겠다며, 어차피 다 치우지 못할 거라며 잔뜩 쌓인 쓰레기를 애써 외면한다.



    이런 사람이 의외로 많다. 완벽하게 하지 못할 거라면 애초에 시작도 하지 않겠다는 것. 노래도, 그림도, 춤도, 연설도, 글도, 영영 내 것을 내놓지 못한다. 스케치북을 펴고 펜 뚜껑을 열었지만 일단 점 하나를 콕 찍고 나선 ‘으- 이게 아니야!’라며 부욱 뜯어버리고는 다시 텅 빈 페이지를 펼친 다음 망설이는 식이다.



    하지만 그 점에서부터 시작해도 좋다. 작은 점을 덧칠해 크게 만들어도 좋고, 가늘거나 굵은 선을 똑바로, 혹은 구불구불하게 그려 나가는 것도 재미있다. 나는 그게 좋다. 새 종이에서 시작하든, 헌 종이를 재활용하든, 내가 하려는 것은 어차피 점을 찍고 선을 그어 면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그림도, 글도, 노래도, 요리도, 모든 것은 그렇게 시작된다.



    나는 여러 권의 책을 썼고, 영어 책을 번역했다. 뭐든 다시 펼쳐보면 어이구야, 싶게 민망한 부분이 튀어나온다. 그 시기에 주로 쓰던 말투와 철 지난 유행어에 몸이 배배 꼬인다. 직접 찍고 그린 사진과 일러스트레이션도 다시 보니 마음에 들지 않기도 한다. 야, 이땐 내가 이랬구나 하며 하하하 웃은 다음 다시 책을 덮어 책꽂이에 꽂아두고 그다음 일을 한다. 앞으로도 이럴 것이다. 영원히 서툴 것이고, 뭘 하든 새로울 것이고, 어리버리할 것이다. 완벽하지 않을 것이다. 그 사실을 마음속에 받아들이면 좀 편안해진다.



    일하는 과정을 좋아하지만, 작업물에 너무 커다란 의미를 두는 걸 경계한다. 과정을 즐기되, 결과에 대해선 어느 정도는 마음을 비워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일’이고, 의뢰인이 존재하며, 그의 요구에 맞추어 작업한 것이니 내 쪽에서 지나치게 작가적인 고집을 부리는 건 소모적이며 불필요하다. 작가의 의도를 전달하되, 집착하지 않는다. 내가 만든 걸 내 새끼, 내 자식이라 부르며 그 안에 자신을 지나치게 담아버리면 곤란하다. 그럼 정말이지, 아주 금방 지쳐버릴 것이다. 말은 쉽지만, 노력이 필요하다.



    순수예술 장르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독자든 비평가든, 누군가는 그것을 소비한다. 각자의 시선으로 보고 느끼고 평할 자유가 있다. 그들의 뒤를 졸졸 쫓아다니며 ‘그건 왜곡이에요, 저는 그런 의도가 아니었다고요’라는 소리를 해 봤자다. 물론 의도적으로 명예를 훼손하는 경우도 있으나 내가 이야기하는 건 일반적인 비평과 의견 개진이다. 어쨌든, 내 손으로 만든 것이 이제 나를 떠나 다른 이에게 간 것이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고, 잘 떠나보내자.



    떠나보내는 의식은 중요하다. 이걸 제대로 치르지 않으면 그다음 일에도 영향을 미친다. 좋은 평가는 좋아서, 나쁜 평가는 나빠서 내가 이리저리 흔들린다. 지난번처럼 잘해야 하는데, 혹은 지난번처럼 또 말아먹으면 안 되는데, 라며 모든 기준이 그놈의 ‘지난번’이 되어버린다.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데 자꾸 발목을 잡힌다. 계속 꺼내 보며 머리를 쥐어뜯는다. 내가 이런 색을 칠했네, 이런 문장을 썼네, 이런 맛을 냈네. 그런데 지금은 왜 안 될까? 난 쓰레기야. 앞으로도 계속 이 모양일 거야… 안 되죠, 안 됩니다. 그 어두운 상상이 실제가 되지 않도록,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밖으로 나갑시다.



    나는 이럴 때 햇볕을 쬐는데, 동네를 두 바퀴쯤 돌며 산책하는 걸 좋아한다. 달콤한 걸 사서 집에 돌아와 커피나 홍차를 준비한다. 평소보다 조금 더 정성 들여 차를 만들고, 세상에서 가장 근사한 잔에 담아 마신다. 리셋 버튼을 눌러, 한 번 껐다 켜는 것이다.



    그리고 내 안의 열정이 어느 순간 식을 수도 있다는 걸 염두에 두어야 한다. 배우고 일하는 게 너무 재미있어서 온종일 그 생각만 나고, 밥 먹고 잠자는 시간마저 아까울 때도 있지만 그게 언제까지나 쭉 이어지진 않는다(이어져도 곤란하다). 영원히 절절 끓지 않는다. 위로 쭉쭉 치솟던 열정 그래프의 각도가 어느 순간부턴가 완만해져 수평에 가까워지는데, 때론 땅 아래로 내려갈 수도 있다.



    사람마다 다르지만, 거칠게 말하자면 20대엔 열정이 버글버글 끓고, 30대엔 그 열정의 원석을 캐어 잘 다듬어 값을 올린다. 그리고 40대로 접어들면… 슬슬 더는 예전 같진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내 인생 이제 끝이냐, 내 세계가 와르르 무너지는 것이냐, 나는 이제 가치 없는 인간이냐, 전혀 아니죠. 슬슬 또 새로운 재밋거리를 찾아가야 하는 때가 온 것입니다. 그 사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 위해 준비해야 한다는 뜻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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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하던 걸 그만두는 게 곧 패배와 실패를 뜻하진 않는다. 그동안 쏟아부은 열정, 노력, 시간, 돈이 아깝고 억울해 억지로 계속하는 게 오히려 어리석다. 내가 내 발목을 잡는 셈이다. 고냐 스톱이냐, 누구도 대신 결정해주지 않는다. 내가 나와 합의를 봐야 한다. 그동안 할 만큼 했고 이제는 됐어, 라는 생각이 들면 거기서 끝낸다. 끝을 내야 그다음을 시작할 수 있다.



    혹은 하던 걸 계속하되, 내 자세가 달라진 것을 받아들인다. 20대, 30대에 거친 파도를 짜릿하게 타고 달렸다면 이젠 잔잔함을 즐길 때가 된 것인지도 모른다. 잔잔하게, 꾸준히 내 페이스로 가겠다는 것. 결국 우리는 길게 가야 한다. 굵으냐 가느냐 하는 건 그다음 문제다. 길게 가기 위해선 탄력과 복원력이 필요하다. 손으로 꾸욱 누른 자국이 다시 쑤욱 솟아올라야 한다. 푹 자고 일어나, 어제의 기분에서 벗어나 새로운 날을 시작해야 한다.



    완벽을 추구하며 자신을 괴롭히는 대신 내 속도를 스스로 정하는 사람이 좋다. 그렇게 되기 위해 오늘도 마음을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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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그도 그럴 것이 디퓨저는 성수동이나 망원동의 공방 제품부터 명망 높은 니치 브랜드까지 스펙트럼이 매우 넓다. 이를 나름의 기준으로 분류하자면, 유럽에서 온 유서 깊은 조향회사 브랜드 제품과 일본, 포틀랜드, 호주, 샌프란시스코, 브루클린 등의 힙스터 동네에서 날아온 아날로그 감성의 공방형 제품들로 크게 구분할 수 있다. 이런 경향으로 인해 국내에도 천연, 수제를 내세운 방향 시장이 성장했다. 개인적인 추천 브랜드는 월리, 산타마리아노벨라, 라우라, 프라고나르, 리나리, 펜할리곤스, 크리드, 아포티케, P.F 캔들 등등인데, 이외에도 훌륭한 브랜드는 언제나 질 좋은 디퓨저를 생산한다.



    이런 브랜드의 디퓨저에는 인공향료와 같은 석유화학 추출물이 적게 들어가지만 기본 베이스가 에탄올이란 점은 어쩔 수가 없다. 그러니 구매하기 전에 ‘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에 의한 위해우려제품 안전기준’에 적합한 검사를 통과했는지 꼭 확인한다. 수제, 천연이란 말에 유혹 당하면 안 된다. 수제란 조잡하다는 단서일 수 있고, 굳건한 카르텔이 존재하는 조향업계에서 값싼 천연은 마케팅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어느 날 아버지가 집에 들르신 적이 있었다. 아들 사는 집을 한 바퀴 둘러보시더니 다른 말씀 대신 집에서 웬 화학약품 냄새가 나는 것 같다고 미간을 찡그리셨다. 디퓨져만큼은 소비자 가격을 고려하지 않고, 늘 신경 쓰고 살았음에도 이렇단 말이다. 뭐, 긍정적으로 생각하자면 부모님의 집 냄새로부터 완벽한 독립을 확인 받은 에피소드이기도 하다.



    향초나 향은 디퓨저의 좋은 대안이다. 다만, 불 관리를 잘 해야 한다는 제약이 있고, 특히 향초는 알려진 것보다 공간을 지배하는 방향 능력과 지속성이 떨어진다. 즉, 향초로 집 냄새를 구축하려면 돈이 좀 많이 든다. 반면, 향은 의외로 쓸모가 많다. 음식을 하거나 집 안이 눅눅할 때 피우면 도움이 되고, 옷방에서 주기적으로 향을 피우면 오래된 향수, 땀, 체취 등에서 우러나오는 일상의 잡내를 가려준다. 룸스프레이도 이런 역할을 한다. 옷장에 4~5회 칙칙 뿌리고 문을 닫아두길 반복하면 옷에 향이 밴다. 단, 실내 습도가 60% 이하인 건조한 날에만 그리 하도록 하자. 마음에 드는 향이 있다면 산타마리아노벨라의 왁스 태블렛도 훌륭한 선택이다. 디퓨저를 놓기 힘든 서랍장 같은 좁고 밀폐된 공간에서 진가를 발휘하는 친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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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පුන චීකෙක්ද - පපන් ජකෙක්ද?
      පපන් ජකෝ දබන් සමා පාදාසොන් පාදාසොන්
      Dr. Wimal de Sil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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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앞에서 두 편의 글을 통해 뇌과학의 기초를 공부했습니다. 이 지식들을 바탕으로 ‘중독’이란 현상을 이해해봅시다. 앞의 글들을 읽지 않으셨다면 지금이라도 읽으면 좋겠습니다.



    알게 모르게 우리는 ‘중독’이란 개념을 많이 사용합니다. 노래가 마음에 들어 자꾸 귓가를 맴돌면 “그 노래, 은근 중독성 있다”고 하고, 음식이 맛있을 때도 예컨대 “마약김밥” 같은 표현을 쓰지요. 중독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 예전에는 물질(술, 담배, 마약)만 중독을 일으킨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중독이 뇌에서 일어나는 현상임이 밝혀지면서 이제는 도박, 섹스, 게임, 스마트폰 사용 등 ‘행동’이 중독을 일으킨다는 개념이 생겨났습니다. 둘째, 중독은 늘고 있습니다. 물질중독 면에서는 술, 담배는 조금 줄지만 약물중독이 늘고 있지요. 더 문제는 행동중독입니다. 세상이 디지털화, 상업화되면서 갈수록 자극적인 컨텐츠를 팔거나 자극적인 행동을 부추겨 돈을 벌려는 사람들이 늘어나므로 행동중독은 계속 늘어날 겁니다.





    술이 청소년의 뇌에 미치는 영향


    우선 전통적으로 중독의 대표주자(?) 격인 술과 담배에 대해 알아봅시다. 술이 왜 나쁜지에 관해서는 책 한 권을 써도 모자랄 겁니다. 담배도 마찬가지지요. 새삼스럽게 술은 간이나 위에 나쁘고, 담배는 폐나 기관지에 나쁘다는 말을 늘어놓을 생각은 없습니다. 다 아는 얘기잖아요. 그보다는 담배와 술이 뇌에 미치는 영향, 특히 청소년의 뇌에 미치는 영향을 알아봅시다.



    청소년의 뇌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정리해볼까요? 뉴런들이 마구 자라고 연결(시냅스)이 늘어나면서, 한쪽에서는 불필요한 뉴런들이 없어지는 가지치기가 진행된다고 했습니다. 기능을 더욱 빠르고 효율적으로 만들지만 동시에 새로운 기능을 익히기 힘들어지는 수초화가 일어난다고도 했습니다. 간단히 말해 청소년의 뇌는 어디나 ‘공사 중’입니다. 짓고 허물고, 다리를 놓고, 길을 만들고 넓히고 포장하느라 여념이 없습니다. 건물을 지을 때 기초 공사가 잘못되면 이미 지어진 건물에 충격이 가해진 것보다 훨씬 큰 문제가 생기지요. 마찬가지로 뉴런들이 자라고, 연결되고, 정리되는 와중에 알코올이나 니코틴, 약물이 쏟아져 들어오면 뇌에 엄청난 충격이 됩니다. 뇌가 가장 빨리 발달하는 2세 미만 유아에게 술이나 담배를 주지 않지요. 그렇다면 뇌가 두 번째로 빨리 발달하는 청소년기에 술이나 담배를 하는 건 어떨까요? 세 가지 영향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우리 몸의 모든 기능은 유전자의 지배를 받습니다. 청소년의 뇌에서 뉴런들이 자라고, 없어지는 과정 역시 뉴런의 성장과 가지치기를 지배하는 유전자가 ‘켜지고 꺼지면서’ 진행됩니다. 그런데 알코올은 이 과정에 끼어들어 가지치기 유전자를 켜버립니다. 청소년도 술을 마시고 깨는 것을 보면 성인과 똑같습니다. 사실 간기능이나 대사가 훨씬 왕성해서 더 빨리 깨지요. 그러나 겉으로는 똑같아 보일지 몰라도 뇌는 성인보다 훨씬 큰 손상을 받습니다. 특히 기억을 담당하는 해마라는 부위가 쉽게 손상되어 학습능력에 영향을 미칩니다. 한 마디로 머리가 나빠진다는 거지요.



    두 번째로 술을 마시면 위험한 행동을 감행하여 사고를 당할 위험이 높습니다. 성인도 마찬가지지만 청소년은 더욱 그렇습니다. 이전 글에 썼듯 충동은 강한데 충동 조절 능력이 약하기 때문입니다. 또 다른 요인도 있습니다. 역시 유전자 얘깁니다. 알코올은 DRD4라는 도파민 수용체 유전자의 스위치를 올립니다. 이 유전자는 ‘위험 감수 유전자’라는 별명이 있어요. 사람은 위험한 행동을 통해 쾌감을 추구하는 성향이 저마다 다릅니다. 하지만 평소에는 위험한 행동을 별로 하지 않던 사람도 알코올에 의해 DRD4 유전자가 켜지면 위험을 감수하고 짜릿한 흥분을 맛보고 싶어집니다. 청소년의 뇌는 환경의 영향에 민감하기 때문에 위험한 행동을 감수하는 것 자체가 다시 뇌의 구조와 기능에 영향을 미치지요. 예, 기능은 물론 구조까지 바뀝니다.



    마지막으로 술과 담배는 중독을 일으킵니다. 중독이 정확히 뭔가요? 1) 어떤 물질에 의존성이 생겨 자꾸 사용하게 되고, 2) 사용할수록 내성이 생겨 같은 효과를 얻기 위해 점점 더 많은 양을 사용해야 하며, 3) 끊으려고 하면 심한 금단증상이 나타나면 중독이라고 합니다. 옛날에는 중독을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거나 의지가 약해서 생긴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과학이 발달하면서 이제는 중독이란 뇌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며, 질병으로 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중독을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이 이 전 글에서 설명했던 도파민과 보상중추입니다. 술과 담배 등 중독을 일으키는 물질들은 도파민 분비를 증가시켜 보상중추에 ‘중요한 것’으로 인식됩니다. 아예 도파민의 농도를 직접적으로 증가시키는 물질도 있습니다. 이런 물질들을 마약이라고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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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 “저는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사진도 꽤 찍으니까 혼자서 3인분어치 일을 할 수 있습니다. 가성비 괜찮은 외주 작가예요”라고 자기소개를 하곤 했다. 3인분의 일을 한다면 3인분의 고료를 받아야 하는데, 1인분 고료를 받으면서 일을 세 배로 하겠다는 걸 마치 자랑인 듯 홍보했단 얘기다. ‘가성비 좋은 작가’, 이게 내 강점이라고 믿었다. 지금은 더는 그런 식으로 말하지 않는다. 제대로 된 생각이 아니라는 걸 알아서이고, ‘가성비’라는 표현이 싫어져서다.



    다들 알겠지만 가성비란 ‘가격 대비 성능’의 약자다. 영어로는 ‘cost-effectiveness’쯤 될까? 우리가 가진 시간과 재화의 양은 한정적이다. 아니, 항상 허덕인다고 하는 게 맞겠지. 한없이 부유하면서 한없이 여유로운 사람은 거의 없을 테니까. 그러니 같은 양의 시간과 재화를 투자해, 물질이든 경험이든 이왕이면 더 좋은 것을 얻길 원한다. 좋은 음식을 먹고, 좋은 옷을 입고, 좋은 것을 보고 느끼고 싶다. 하지만 가성비가 삶의 모든 것이 되면, 아예 내 삶을 끌고 나가기 시작하면 곤란해진다. 사방에서 가성비 타령을 한다. 그놈의 가성비. 이 표현은 대체 언제부터 쓰이기 시작한 걸까? 처음엔 재미있고 센스 있다고 생각했다. 귀여운 줄임말이네. ‘Case by case’를 ‘케바케’라고 줄여 말하는 것 같아.



    그 귀엽던 가성비가 이제는 한국을 지배한다. 무언가를 선택하려는 순간, 가장 높은 우선순위가 되어버린다. 내 마음은 어떤지, 나는 뭘 원하며 어떤 걸 좋아하는지, 뭘 해야 내가 행복해지는지는 뒷전이고 일단 가격부터 묻는다.



    ‘이거 얼마지? 비싸네? 더 싼 건 없나?’



    인터넷을 샅샅이 뒤진다. 혹시 비슷한 저렴이 상품은 없는지, 과연 이걸 사서 돈값 할 수 있을지, 뽕을 뽑을 수 있을지 예민하게 검색한다. 가성비가 최우선인 삶은 슬프다. 가성비가 최우선인 사회는 끔찍하다. 꼭 필요한 물건을 사는 건 그다지 재밌거나 신나지 않는다. 그저 해야 하니까 하는 거지. 두루마리 휴지 36개 한 묶음을 사는 게, 생수 2리터짜리 12개 묶음을 사는 게, 생리대 중형과 대형을 한 아름 사는 게 뭐 그리 재미있겠는가. 그런 소비 안에 대체 무슨 즐거울 만한 건덕지가 있겠느냐 이겁니다.



    소비의 즐거움은 그거 없어도 사는 데 전혀 지장 없는, 세상 쓰잘데기 없는 걸 살 때 비로소 솔솔 피어난다. 이거 너무 예쁘다, 꼭 필요한 건 아니지만 예뻐! 오, 냄새 되게 좋다, 안 사도 되지만 향이 너무 좋아! 자그마하든 큼직하든, 나 그리고 소중한 사람들을 위해 고르는 요런 물건이 주는 기쁨이란 참으로 대단하다. 그런 소비를 한 날은 기분이 좋다. 두고두고 떠올리게 된다.



    물건뿐인가, 경험도 마찬가지다. 좋아하는 아이돌의 팬미팅, 확 꽂혀버린 뮤지컬 공연 2회차, 기다렸던 영화, 새로 나온 소설, 전시회, 짧거나 긴 여행…. 모두 가성비로만 따지자면 꽝일지도 모른다. 그치만 나는 지금 이렇게 행복하다. 가성비를 따져야 할 땐 따지고, 열심히 계산해 가며 아껴 모은 돈으론 가성비를 싹 잊고 즐기는 것이다. 이게 사는 거지!



    ‘창작’은 돈이 든다. 돈이 수시로 들어가는 행위다. 금덩어리를 주무르고 깎아 다이아몬드를 콕콕 박는 작업을 해서가 아니라(해보고 싶습니다), 돈이 종종 창작의 연료가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정성 들여 만든 맛있는 음식을 먹고, 향기로운 차를 마시며 아… 하고 기분 좋게 한숨을 내쉬어야 한다. 낯선 여행지에서 설렘을 느껴야 하며, 새로운 잠자리에서 말똥말똥 눈을 뜨고 외로움도 느껴야 한다. 때론 누군가와, 때론 자신과 대화를 나누어야 한다.



    우리는 아름다운 것, 좋은 것을 끊임없이 보고 누려야 한다. 우리 안의 우물을 촉촉하고 찰랑하게 채워야 한다. 그래야 취향도, 입맛도 더 예민해지고 새로운 창작 욕구가 피어오른다. 우리는 모두 창작자다. 좋은 문화를 누려야 좋은 문화를 만들 수 있다. 선순환이다. 하지만 문제는, 이 사회가 제안하는 임금 수준이다. 꼭 필요한 것부터 합리적으로 소비한 후 남은 거로 인생을 즐기려는데, 잠깐만요, 어째 남는 게 없네? 그 결과, 입만 열면 ‘돈’이다. 그걸 빼고 다른 걸 논할 수 없다. 누구를 만나든 기승전돈, 때로는 돈승전돈, 심할 땐 처음부터 끝까지 돈돈돈돈.



    심지어 평창 동계올림픽 개회식을 두고도 가성비 이야기를 한다. 다른 나라에선 얼마를 썼는데 우리는 훨씬 싸게 했대, 그 돈으로 그 퀄리티를 뽑은 거래, 가성비 대박이지! 여보세요, 그게 자랑입니까. 그 이야기 속에 뭐가 숨어 있는지 보이지 않습니까. 싼값에 뼈와 살을 갈아 넣으며 과로한 사람들은 보이지 않느냔 말입니다.



    빠듯한 일정과 열악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좋은 결과를 낸 것은 칭찬하되, 비상 상황을 헤쳐나간 후에는 그에 맞게 보상해야 한다. 그래야 제대로 된 시스템이며 제대로 굴러가는 사회다. ‘싼값에 잘했다’라는 표현에서 우리가 칭찬해야 할 부분은 ‘잘했다’지 ‘싼값에’가 아니다.



    헝그리 정신요? 웃기고 있어. 나는 이 말을 싫어한다. 일은 시켜먹고 싶은데 돈은 제대로 주지 않으려는 쪽에서 주로 하는 소리다. 듣는 순간 경계해야 한다. 아끼고 또 아끼면, 최소한의 것만 자신에게 허용하면, 쪼들릴 대로 쪼들리면 숨은 쉴 수 있을지 몰라도 전혀 행복하지 않다. 미래를 꿈꾸기 어렵다. 뭐 하나 하는 데도 가성비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고, 사소한 소비 실패에 크게 좌절하게 된다. 좌절은 분노로 이어진다. 잔뜩 날이 서고 신경질적으로 변한다.



    우리의 물가는 너무 높고, 평균 노동소득 수준은 한심하게 낮다. 일을 하고 임금을 받아 그걸로 일상을 꾸리고 저축해야 하는데 말처럼 되지 않는다. 급여가 통장에 들어오자마자 신용카드 회사에서 빼가는 걸 한숨 쉬며 멍하니 바라본다. 사실 멍하니 바라볼 시간도 없다. 순식간에 자동 인출되니까. 그리고 남은 얼마간의 돈을 한 달, 30일로 나누어 하루 생활비를 가늠해본다. 삶이 피곤하다. 좋은 걸 봐도 좋은 줄 모르겠고, 웃기는 걸 봐도 웃음이 나지 않는다. 시니컬하게 입꼬리 한쪽을 올리며 피식하고 만다.



    이 상황에서 창작을 이야기하라고? 배고픔과 고통은 창작에 필요한 작은 부분일 수도 있지만, 전부가 되어서는 안 된다. 반드시 ‘부분’이어야 한다. 헝그리 정신을 들먹이며 창작자의 고통만이, 눈물의 짜고 쓴 맛만이 가치 있다 생각한다면 멸치 똥을 한 주먹 모아서 종일 씹어보길 권한다. 입에 잘 맞을 것이다.



    몸과 마음의 건강을 관리하고 삶 전반을 돌보는 일은 창작자에게, 그리고 세상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일이다. 우리는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삶을 끝없이 유지 보수해야 한다. 부디 가성비가 최고의 가치가 되지 않길 바란다. 배변 후에는 질 좋은 휴지로 항문과 성기를 닦고, 유해물질 없는 생리용품을 사용하고 싶다. 햅쌀로 밥을 지어 제철 재료로 만든 반찬을 곁들여 식사하고 싶다. 여름엔 냉방을, 겨울엔 난방을 하고 싶다. 생활 물가와 최저임금 사이의 한없는 간극이 좁혀지길 바란다. 최저임금은 결코 임금 상한선이 아니다. 이 모든 것이 부디 선택 사항이 아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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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 ‘창작’이란 단어는 굉장히 거창하게 들린다. 아휴 저는 그런 거 못해요, 라고 손사래 치며 수줍게 호호 웃어야 할 것만 같다. 대단한 발견, 대단한 예술, 뭐 그런 성취를 이룬 사람들이나 쓸 수 있는 표현 같다. 그러니 자신에게 ‘창작자’라는 말을 허락하는 것은 엄두도 나지 않는다.



    그런데 창작이란 존재하지 않던 걸 뿅 하고 만들어내는 게 아니라 기존의 것을 비틀고 바꾸는 것에 더 가깝다. 냉장고를 들여다보며 새로운 재료 조합을 고안하는 것도 그중 하나다. 나는 음식에 기름을 넣어야 할 땐 카놀라유와 올리브유, 버터를 내키는 대로 번갈아 넣는다. 때론 에라 모르겠다며 마요네즈나 땅콩버터를 한술 푹 떠서 집어넣기도 하는데, 이게 의외로 꽤 맛있을 때가 있다(물론 아닐 때도 있습니다). 설탕 대신 딸기잼이나 사과잼을 넣어보기도 한다. 재미있다. 비빔면에 오이 채 썬 것 대신 샐러리를 올려보기도 하고, 멸치볶음이 어정쩡하게 남았길래 그걸 넣고 파스타를 후다닥 볶기도 한다. 낙지젓과 사과를 넣고 샌드위치를 만들기도 한다. 의외로 괜찮을 때도 있고, 헛웃음 나게 꽝일 때도 있다. 최초의 치즈 라면을 시도한 사람, 참치김밥에 깻잎을 넣은 사람은 모두 위대한 창작자이며 위인이시다. 존경합니다.



    하지만 누가 억지로 등을 떠밀며 새로운 시도를 하라면 갑자기 하기 싫어진다. 나오려던 괴이한 아이디어가 다시 쑥 들어간다. 요런 즐거움은, 의무로 가득한 빡빡한 일상에서 나오기보단 딱히 할 일 없이 뒹굴거리던 어느 날 갑자기 튀어나오는 경우가 많다. 하도 놀다 보니 지루해서, 자다 자다 지쳐서 뭐라도 해볼 때 튀어나온다. 휴식과 여유, 여백은 그래서 중요하다. 우리는 모두 가능성을 품고 있는 창작자들이다.



    외출을 앞두고 진지하게 뭘 입을지 고민한다. 이 티셔츠와 저 바지, 사 놓고 쳐다만 보던 화려한 무늬의 양말을 드디어 개시한다. 과한가 싶은데 신어보니 또 괜찮다. 손톱에 매니큐어를 칠하고 스티커를 붙인다. 한때는 열 손가락에 당연히 한 가지 색을 칠해야 한다고 믿었지만 그런 규칙 따위 잊은 지 오래다. 하긴, 그 시절엔 위아래 세트로 된 투피스 정장만 제대로 된 옷이라고 생각했지. 원피스에 운동화를 신는 것은 꿈도 꾸지 못했고. 지금은 다양한 시도를 한다. 모든 것이 창작이며 재창조다. 요렇게 나 즐거우려고, 내 기분 좋아지려고, 내 입에 맛있는 것 넣어주려고 시도하는 것들은 하나같이 재미있다. 생계를 위해 의무적으로 하는 일보다 몇 만 배 재미있다. 쇼핑만 해도 그렇다. 생리대 일 년 치, 쌀 한 가마니 살 때는 무표정이지만 로드샵 화장품 매장에서 천 원짜리 매니큐어를 살 땐 세상 진지해진다.



    때론 제대로 풀리지 않는 날도 있다. 뭐, 그럴 때도 있죠. 고르고 고른 매니큐어를 막상 발라보니 영 아닐 때도 있지만, 그렇다고 엉엉 울며 손톱을 뽑을 생각은 없다. 그게 뭐 대수라고. 새롭게 시도한 요리가 완전히 꽝일 수도 있지만, 식칼을 두 동강 내고 앞치마를 활활 불태울 생각도 없다. 그게 뭐 대수라고. 우리는 그 정도로 기죽지 않는다. 다른 분야의 창작도 다르지 않다. 그냥 하는 것이다. 그거 별로야라는 태클이 들어올 때도 있지만, 그게 뭐 대수라고. 재밌자고 하는 건데 어때.



    때론 요 즐거움을 잊는다. 뭔가를 요리조리 궁리해서 곰질곰질 만드는 게 얼마나 즐거운지 잊는다. 사는 게 바빠서 그렇다. 시간은 한정되어 있고 체력도 집중력도 대단치 않으니 당장 돈 되는 것, 스펙 되는 것, 티 나는 것 위주로 해야 해서 그렇다. 진심으로 재미있어서, 끓어올라서 하던 것을 그사이 하나둘 잊고 잃는다.



    나는 핸드폰 카메라에 감사한다. 사진을 좋아하고, 더 잘 찍고 싶어 욕심내면서 장비가 다양해지고 커지고 무거워졌다. 내가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게 아니라 크고 무거운 카메라가 나를 질질 끌고 다니는 것 같아 사진 한번 찍으러 나가기가 점점 힘들어졌다. 그리고 어느새 아예 사진을 찍지 않게 되었다. 지금은 가진 걸 대부분 처분하고, 핸드폰 카메라만 사용한다. 덕분에 한없이 홀가분해졌다. 완벽한 카메라는 아니지만 뭐, 어떤 카메라는 완벽한가. 나는 예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사진을 다시 사랑하게 되었다. 난생처음 동영상을 찍기 시작해 아예 유튜브 채널까지 개설했다. 쩔쩔매던 영상 편집 프로그램도 이젠 꽤 능숙하게 다룬다(으쓱).



    본격적으로 사진을 찍은 지도 어느새 25년이 넘었다. 사진을 잘 찍어서, 혹은 이 일이 돈이 되어서 그렇게 오랫동안 하는 게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 다른 사람과 경쟁할 필요 없이 내 재미를 위해 사진을 찍어서다. 경쟁했다면 아마 오래전에 지쳤을 것이다. 돈과도 상관없다. 물론 프리랜서로 다양한 분야의 일을 하다 보면 내가 찍은 사진으로 소득을 얻는 경우도 생긴다. 이것은 우연한 기쁨, 부수적 수입이다. 보통은, 다른 일로 열심히 돈을 벌어 사진 찍으면서 놀겠다는 자세다. 스트레스나 부담 같은 것이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없다. 앞으로도 지금처럼 느슨하고 헐렁하게 사진과 영상을 찍고 싶다.



    우리는 너무 심하게 경쟁하고, 그게 몸에 배어버려 아예 인식조차 못 한다. 취미로 즐기는 것마저 악착같이, 참으로 열심히 한다. 사진이 좋아서 모인 사람들끼리 사진 장비로 경쟁하고, 음악이 좋아서 모였는데 스피커와 앰프를 뽐낸다. 내 등산복만 유행에 뒤떨어진 것 같아 신상품을 사기 전엔 등산 모임에 나갈 엄두가 나지 않는다. 최고가 되지 않으면, 최소한 상위권 무리에 속하지 않으면 패배자가 된 것 같다.



    나는 취미로 하던 땅고를 몇 년 전에 그만두었는데, 셀프 안식년을 선언하고 해외 여러 나라에서 체류하기로 마음먹으면서 오랜만에 땅고 슈즈를 꺼내어 가방에 챙겼다. 무척 설렜지만, 한편으론 좀 망설여졌다. 그만둔 지 벌써 몇 년이나 지났는데, 자세도 스텝도 모두 잊어버렸는데 괜찮을까? 괜히 춤추러 갔다가 쪽팔리기만 한 거 아닐까? 땅고 동호회에서 알게 된 친구에게 그렇게 이야기하니 푸하하, 하고 웃는다.



    “걱정 마. 한국 사람은 세상 어디 가도 제일 춤 잘 춰. 일단 하면 다 생각날 거야. 알잖아. 한국 사람, 뭐 하나 배워도 목숨 걸고 악착같이 배우는 거.”



    아이고, 맞다 맞아. 나도 그랬다. 즐거워지자고 행복해지자고 시작한 땅고인데도 무슨 성적표라도 받는 기분으로 이를 악물고 배웠다. 그래서 어느새 진이 빠져 그만둔 거였지. 우리는 뭘 하든 공부처럼 일처럼 한다. 너무 바쁘다. 빈틈이 없다. 취미에서도 가성비를 찾고, 여행에서도 가성비를 찾는다. 잘하지 못할 거면 아예 그만둬버린다. 이미 검증된 코스, 맛집이 아니면 가지 않는다.



    수년 만에 땅고 슈즈를 챙기며 생각한다. 나는 최고가 되고 싶은 것이 아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언제까지나 즐겁기를 바란다. 그래서 내게서 다시 멀어지지 않기를 바란다. 잘 풀리는 날이나 그렇지 않은 날에도 지치지 않고 계속 무언가를 창작할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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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 돌이켜보면 전부다 몰랐으면 더 좋았을 이야기다. 스텐에서 무쇠로 그리고 다시 스텐(그사이 세라믹도 다녀갔다)으로 돌고 도는 맘카페의 조류에 함께 올라탄 방랑과 모험의 여정 끝에 남은 건 하부 찬장을 가득 메울 정도로 높게 들어찬 프라이팬 산이다. 따라서 지금부터 들려주는 이야기는 취향을 앞세우거나 유행하는 새로운 경향을 몸소 접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들의 대화가 아니라 혼자 사는 단출한 살림에 어울리는 궁극의 일상 프라이팬에 대한 조언이다.



    스텐과 무쇠 팬이 나쁠 리가 없다. 둘 다 반영구적이며 열전도에 있어 유리하고, 불소수지 걱정은 접어둬도 되니 자녀가 있는 주부들에게 꼭 필요한 필수품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그런데 사실상 요리를 망치고 멀리하게 만드는 주범이기도 한다. 스텐 팬인 경우 처음 사면 식초나 베이킹 소다를 넣고 끓인 다음 올리브유 등으로 닦는 세척 과정을 해야 하고, 무쇠 팬은 몇 차례나 기름을 먹이는 시즈닝을 작업을 반드시 해야 한다. 그리고 낮은 불에서 불 조절을 해가며 조리해야 눌러 붙지 않는다. 스웨덴에선 무조건 무쇠 팬을 쓴다고 해서 끈기를 갖고 다양한 제품에 도전해봤지만, 요리 전엔 꽤나 긴 예열시간을 가져야 하고 사용 후에는 바로바로 물로만 씻어서 말리고 기름칠 하는 작업이 여간 귀찮은 게 아니어서 북유럽 라이프와는 등을 지게 됐다. 다들 길만 잘들이면 된다고는 하나 길들이기가 텍사스 로데오만큼 만만치 않아서 계란 하나 굽는 데도 많은 정성이 필요하고 너무 무겁다. 안 그래도 불 앞에 서기 꺼려지는 무더위에 도저히 할 일이 아니다.





    암바이재팬.jpg

    암바이재팬





    뜨거웠던 도전의 역사 끝에 일상성을 찾아 안착한 팬이 일명 ‘엑스칼리버 후라이팬’이라 부르는 업소용 팬이다. 이와츄, 샐러드마스터, 휘슬러, 드부이에, 터크 등등을 찬장 속으로 밀어낸 실전에 특화된 전천후 프라이팬이다. 참고로 이 제품을 검색할 땐 ‘후라이팬’이라고 쳐야 한다는 걸 명심하자. 사실 엑스칼리버는 제품명이 아니다. 미국 위드포스사의 특허 코팅법의 명칭으로 우리가 사용하는 일반 코팅 팬에 비해 10배 이상의 긴 수명과 강력한 코팅력을 자랑한다. 권장하진 않지만 식용유 없이 계란을 구워도 전혀 눌러 붙지 않고 써니사이드업이 나올 정도며, 이 팬만 있음 누구나 럭비공 모양의 오믈렛을 어렵지 않게 만들 수 있다. 가벼워서 핸들링하기도 좋은데, 과거 공효진이 에서 동전을 넣고 팬 돌리기 연습을 하던 바로 그 팬이다.



    하부는 통3중 알루미늄 구조이고, 윗면은 예의 엑스칼리버 코팅을 깔아서 하루에도 수십 번씩 사용해야 하는 업소에 제격인 만큼 내구성이 뛰어나다. 게다가 4.8센티미터 정도의 깊이가 있어서 스테이크 등의 굽기부터 파스타 같은 볶음요리나 국물 자작한 전골류까지 전천후로 활용할 수 있다. 가장 매력적인 건 가격이다. 웬만하면 1~3만 원 대 사이에서 인터넷으로 쉽게 구매할 수 있다. 그런데 앞서 말했듯 엑스칼리버 팬은 어느 한 회사의 제품명이 아니다. 같은 이름과 디자인으로 국산부터 중국산까지 다양한 회사에서 비슷한 가격대의 다양한 제품이 존재한다. 기본적으로 국내 주방용품업체가 제작한 물건이 좋고, 경험상, 바닥에 킹센스, 도일(DOIL), EXCALIBUR-PAN 등이 각인되어 있다면 마음 놓고 집으면 된다.



    그간 엑스칼리버 팬의 최대 단점이 인덕션에서는 사용할 수 없다는 점이었는데, 최근에 혼용 가능한 제품이 킹센스, 알텐바흐 등에서 나왔다. 혹시나 외향이 너무 마음에 안 든다면, 표면을 가공해 무쇠 팬의 단점을 대거 보완한 일본 암바이(ambai)사의 제품들이 훌륭한 대안이다. 실사용 예는 를 참고하자. 마지막으로 코팅 팬은 기름이나 수분 없이 가능한 절대로 예열하지 않는 게 좋다. 많이들 걱정하는 불소수지가 배출되기 때문인데 수분을 함유한 음식을 함께 가열하면 사실상 팬에서 불소수지가 분해될 정도로 온도가 치솟지 않아 대부분의 위험은 피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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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 Mala huthi egena ganillako me petti akur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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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 "මොනව හරි කුරුටු ගාලා යන්න" කියලා තියන නිසාද කොහෙද කවුද එකෙක් කුරුටු ගාලා ගිහිල්ලා..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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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 කටවල් වල ගඳ පුකවල් වල සුව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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කැඩපත් පවුර.....

මොනව හරි කුරුටු ගාලා යන්න